<목차>
- 극한 환경 속 생명을 지킨 섬유의 힘
- 생사를 가른 복장의 차이
- 합성섬유가 바꾼 고산 등반의 판도
- 소수성과 친수성, 그 결정적 차이
-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섬유 기술의 교훈
극한 환경 속 생명을 지킨 섬유의 힘
1950년대 초, 에베레스트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했습니다. 당시 정상에 도달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베이스캠프에도 미치지 못한 채 철수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등정 성공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요인을 꼽지만, 그중에서도 옷과 장비의 발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히 섬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사람들의 목숨을 지키는 데 결정적이었지요.
그 시작은 1930년대 미국 화학자 월리스 캐로더스가 개발한 나일론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다양한 합성섬유가 등장하면서, 극한의 환경에서도 가볍고 튼튼하며 젖지 않는 옷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천연 섬유만 사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였지요. 합성섬유는 단순히 편의를 넘어서, 생명과 직결된 안전장비가 된 셈입니다.
생사를 가른 복장의 차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탐험 사례를 보면, 복장의 중요성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북극 탐험에 나섰던 미국의 피어리와 영국의 프랭클린 탐험대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극명합니다. 피어리 탐험대는 이누이트에게 배운 대로 동물 가죽과 모피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반면 프랭클린 탐험대는 전통적인 울 소재에 의존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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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프랭클린 탐험대는 영하 수십 도의 추위에서 모직 옷이 수분을 머금고 얼어붙어 움직임조차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대다수가 동사하고 말았지요. 반면 피어리 탐험대는 체온 유지에 성공하며 북극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섬유 선택이 생사마저 가른 셈입니다.
울 소재는 흡습율이 무려 15% 이상으로, 땀이나 습기를 머금으면 무겁고 차가워집니다. 게다가 얼어붙으면 마치 쇳덩어리처럼 단단해져 신체의 자유를 방해합니다. 반면 이누이트의 모피 옷은 수분을 튕겨내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나, 극한 환경에 최적화된 복장이었습니다.
합성섬유가 바꾼 고산 등반의 판도
현대의 등반 장비를 보면 그 진화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대다수 클라이머는 내복부터 외투까지 철저히 합성섬유를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소재로는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스터(PE)가 있습니다.
PP 소재는 흡습율이 사실상 0%에 가깝습니다. 땀을 흘려도 섬유가 젖지 않아 무게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무엇보다 땀이 마르면서 체온을 빼앗아가는 기화열 발생을 최소화해, 저체온증 위험을 줄여줍니다. 눈비를 맞아도 섬유가 거의 젖지 않고, 젖더라도 금세 마릅니다.
과거 등반가들은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매번 텐트 안에서 버너로 난방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옷 자체가 땀을 튕겨내니 그런 번거로움이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합성섬유는 가볍고 튼튼해 무거운 장비를 들어야 하는 고산 등반에서 큰 힘이 됩니다.
소수성과 친수성, 그 결정적 차이
섬유의 기본 특성인 친수성과 소수성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친수성 섬유는 수분을 끌어당깁니다. 면, 울 같은 천연섬유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소재는 일상복이나 습한 날씨에는 쾌적하지만, 땀을 많이 흘리거나 젖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체온을 급격히 빼앗습니다.
반면 소수성 섬유는 물을 밀어냅니다. 나일론,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아웃도어 활동, 특히 산악이나 극지 탐험에서는 소수성 섬유가 필수입니다. 땀이 배어들지 않고 겉으로 흘러내리니 체온 유지에 유리하고, 신속히 건조되어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한여름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연섬유 셔츠를 입으면 올라갈 때는 시원하지만, 하산할 때 젖은 옷이 체온을 뺏어 감기에 걸리기 쉽습니다. 심한 경우 저체온증이나 폐렴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합성섬유 셔츠를 입으면 땀이 몸에 머무르지 않고 빨리 증발해 그런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섬유 기술의 교훈
지금도 섬유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고어텍스(Gore-Tex)처럼 통기성과 방수성을 모두 갖춘 기능성 소재가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실패와 성공 사례를 통해 얻은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단순히 따뜻한 옷을 입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체온을 유지하고, 몸에서 발생하는 수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극한 환경에서 생존을 좌우합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작은 섬유 한 가닥이었습니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고산 등정 성공 뒤에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과학의 힘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소재들이 인간의 한계를 넓혀갈 것입니다. 작은 섬유 한 올에 담긴 놀라운 과학, 그것이 진정한 생명의 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